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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식탁
늦은 밤, 작은 아파트의 부엌에는 희미한 전등 하나만 켜져 있었다. 식탁 위에는 한 그릇의 국과 식지 않은 밥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김정자 할머니(74)는 늘 아들을 기다렸다. 결혼 후 멀리 이사 간 아들 준호는 일 년에 한두 번 얼굴을 비추는 게 전부였다. 그는 늘 바쁘다는 이유로 어머니의 집에 오는 걸 미뤘다.
“엄마, 회사 일이 많아요. 시간 나면 갈게요.”
“그랩 일하느라 힘들지? 밥은 잘 챙겨 먹고?”
“그럼요. 걱정 마세요.”
정자는 전화를 끊고 한참 동안 멍하니 식탁을 바라봤다. 혼자 차린 밥상이지만, 습관처럼 두 사람 분을 차렸다. 그녀는 젓가락을 한 짝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밥 같이 먹으면 더 맛있을 텐데…”
겨울이 다가올수록 정자의 집은 더 차가워졌다. 오래된 보일러는 자주 고장났고, 몸도 점점 약해졌다. 하지만 그녀는 아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약을 챙겨 먹으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어느 날, 준호는 회사에서 큰 프로젝트를 맡았다. 야근이 늘어나고,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그 와중에 어머니에게 걸려온 전화가 여러 번 부재중으로 남아 있었다.
“아… 나중엡 지금은 바빠서…”
그는 전화를 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밤, 준호에게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병원이었다.
“어머님이 쓰러지셨습니다. 지금 바로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병원 응급실로 뛰어간 준호는 하얀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어머니를 보고 숨이 막혔다. 얼굴은 창백했고,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엄마…”
정자가 힘겹게 눈을 떴다.
“준호… 왔구나…”
“엄마… 왜 전화했을 때… 내갉”
“괜찮아… 바빴잖니… 엄마는… 네가 잘 사는 것만 보면… 돼…”
그날 이후 준호는 매일 병원으로 출퇴근하듯 어머니 곁을 지켰다. 하지만 병세는 빠르게 악화되었다. 의사의 말대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마지막 날, 어머니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앉으려 했다. 준호가 부축하자 그녀가 미소 지었다.
“준호야… 엄마가 밥 해줄게…”
“엄마, 제발 그만… 그냥 쉬세요.”
“마지막으로… 같이 밥 먹고 싶어…”
병실에선 밥을 지을 수 없었지만, 준호는 근처에서 사온 도시락을 꺼냈다. 그 작은 식탁에 마주 앉아 밥을 먹는 동안, 준호의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엄마… 미안해요…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해요…”
정자는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괜찮아… 내 아들… 엄마는 너를… 사랑해…”
그녀는 마지막으로 준호의 얼굴을 쓰다듬고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준호는 모든 것이 무너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며칠 후, 준호는 어머니의 집을 정리하며 식탁 위에 놓인 낡은 수첩을 발견했다.
"준호 생일… 준호 입사일… 준호 좋아하는 반찬…"
수첩은 온통 아들의 이야기뿐이었다. 페이지마다 적힌 글씨는 점점 흔들리고 작아졌다. 준호는 무릎을 꿇고 그 수첩을 가슴에 안고 울었다.
그날 이후 그는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차려주고 싶었던 밥상을 떠올리며 살아갔다. 하지만 그 따뜻한 밥 냄새는 이제 기억 속에만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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