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좆의 축구신화 - <전설의 냅킨 계약서>

본문
때는 2000년
이때의 리오넬 메시는 이미 청소년 축구계에서는 유명인사였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신문에서는 특집이 되었고 아르헨티나 최고의 명문팀 리버 플레이트를 비롯한 수많은 클럽들이 그를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축구선수하면 꼬리표처럼 달려오는 에이전트
그런 에이전트들에게 메시는 너무나 매력적인 카드였고 메시는 에이전트들에게 열렬한 구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 호르헤를 비롯한 가족들은 너무 어린 아이에게 에이전트는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에 늘상 거절만 해왔죠
그러던 어느 날 레오 메시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인물들이 나타났습니다
마르틴 몬테로와 파비안 솔디니
그들은 메시의 가족들 앞에서 인테르나 AC밀란,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등 최고의 팀들을 읊으며 메시를 이곳과 연결시켜줄 힘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달콤한 말들에 휘둘릴 법한 메시와 가족들이었지만 그들을 지나치게 신뢰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의 우호적인 태도와 엄청나게 매력적인 제안들이 단순히 메시를 스카웃 하기 위한 거짓일 수도 있다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죠
다행히도 그것은 기우였고 몬테로와 솔디니는 실제로 2000년 8월경 바르셀로나의 로사리오 가지올리와 조셉 마리아 민구엘라에게 연락을 함과 동시에 레오 메시의 플레이가 담긴 비디오를 보냈습니다
당시 축구 에이전트로 일하던 민구엘라는 바르샤의 회장 조안 가스파르트의 이적 및 영입작업의 조언자기도 했을 만큼 바르샤에 큰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민구엘라는 메시의 플레이에 매료되었고 곧 당시 바르샤의 기술 감독이었던 카를레스 렉사흐에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민구엘라가 저에게 정말 대단한 녀석이 있다고 말하더군요. 마치 마라도나를 말하듯이. 민구엘라의 얘기를 듣고 처음에는 메시가 한 열여덟이나 열아홉 살 정도는 된 소년이라고 생각했어요. 진짜 나이를 알았을 때는 정말 놀라지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레오에게 관심을 가졌다는 것은 레오가 말 그대로 경이로운 능력을 보여주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클럽 정책에 따르면 카탈루냐 외부 출신, 비유럽권 출신은 더더욱 그랬죠, 과 계약을 맺는 것은 클럽 방침에 어긋나는 것이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레오의 관계자들은 너무도 강력하게 저를 설득했고 저는 레오를 바르셀로나로 직접 데려와서 몇 주 동안 테스트를 해보기로 결정했습니다."
렉샤흐의 선택은 레오 메시를 직접 보는 것
2000년 9월 17일 메시는 아버지 호르헤 메시와 파비안 솔디니와 함께 바르셀로나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메시의 첫 선발 경기는 다음 날인 9월 18일로 잡혀있었습니다
어린 메시는 FC바르셀로나의 최신식 시설에 놀라움을 금치 못 했고 캄프 누의 웅장함에 압도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품은 소년은 곧 경기에 나서기 시작했고 모든 코치들을 매료시켰습니다
하지만 계약은 바로 진행되지는 않았습니다
메시의 입단 결정권을 쥐고 있는 렉샤흐가 부재 중이었기 때문이죠
렉샤흐는 그때 당시에 스페인의 올림픽 결승전을 보러 가느라 바르셀로나에 없었습니다
그는 10월 2일에 귀국할 예정이었고 메시와 그의 아버지는 렉샤흐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죠
10월 2일 귀국한 렉샤흐는 바로 다음 날인 10월 3일 경기에서 메시를 직접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메시보다 나이가 많은 U-14, U-15 선수들로 구성된 경기였고 렉샤흐는 메시가 연상의 선수들과의 경기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했습니다
"저는 식사를 마친 직후 경기장으로 바로 갔습니다. 조금 늦게 도착한 탓인지 이미 경기는 시작되었더군요. 저는 필드 중간 즈음에 위치한 코치진들이 사용하는 벤치로 달려갔습니다. 모든 것을 확인하는 데에는 7~8분이면 충분했습니다. 전 그 자리에서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렸습니다. "저 소년과 계약해야겠다. 오늘 당장." 옆에 있는 청소년 팀 감독들에게 말했죠."
"그날 제가 무엇을 봤냐고요? 제가 본 메시는 정말 작은 체구였지만 자신감에 가득 찬 특별한 아이였습니다. 몸놀림만 빠른 게 아니라 두뇌 회전도 빨랐습니다. 이미 기술적으로 완성된 것은 물론이고 공과 함께 쏜살같이 달리며 앞에 누가 지키고 있건 제치고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죠. 필드 위에서 메시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모두가 그의 재능을 알고 있지만 당시 13살이었던 레오의 재능은 더더욱 눈에 띄었습니다. 저를 보고 메시를 발굴해낸 사람이라 하지만 세상 그 누구라도, 가령 외계인일지라도 메시의 경기를 보고 나면 메시가 얼마나 특별한 소년인지 알 수 있었을 겁니다."
가스파르트 또한 렉샤흐의 선택에 동의했고 곧 간단한 계약이 맺어졌습니다
메시와 그의 아버지는 너무도 기쁜 마음으로 아르헨티나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렉샤흐는 곧 제대로 된 계약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 얼마 안 가 다시 바르셀로나로 그들을 초대할 것이라 알렸습니다
렉샤흐의 확신으로 메시의 테스트는 쉽게 마무리됐지만 계약의 마무리 단계에서 상황이 어렵게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메시에게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었기 때문이죠
첫째, 메시는 타국가 출신이기에 규정상 청소년 전국 리그에 출전이 불가능했습니다
둘째, 메시는 아직 너무도 어린 나이였기에 먼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셋째, 메시가 스페인에 온다면 당연히 그의 가족들 또한 이주할 것이고 FC바르셀로나는 당연하게도 그들의 집이나 생활비, 직장 등을 지원해주어야 했습니다. 정말 어린 소년에게 하는 계약치고는 유래가 없을 만큼 큰 규모의 투자였습니다
넷째, 메시는 GH결핍이 있었기 때문에 지속적인 피하 주사 치료가 필요했습니다
이렇듯 모든 사람들이 레오 메시에 대해서 확신을 갖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렉샤흐는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메시를 반드시 데려와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리오넬 메시는 말 그대로 "너무도 뛰어난 선수"였기 때문이죠
바르샤의 최종 결정권을 쥐고 있던 조안 가스파르트 회장은 그 13살의 소년의 가족들까지 떠맡아야할 가치가 있는지 렉샤흐에게 질문했습니다
렉샤흐는 그 정도는 클럽에서 응당 해야 할 가치가 있다며 자신있게 대답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결정이 늦어지며 시간은 흘러갔습니다
기대했던 계약의 마무리는 되지 않은채 10월 11월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결국 12월 4일 메시의 대변인인 민구엘라와 가지올리는 렉샤흐를 불러 최후 통첩을 날렸습니다
"칼리(렉샤흐의 별명) 씨,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됐어요. 당신이 메시를 맡지 않겠다면 우리는 다른 곳을 선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건 빈말이 아니에요. 우리는 이미 레알 마드리드와도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메시의 가족들은 제 말만으로는 더 이상 확신을 얻지 못하고 있어요. 바르셀로나 또한 신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뭔가 서면으로 작성된 계약서라도 보여주지 않는 이상 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도저히 메시를 놓칠 수 없었던 렉샤흐는 테이블 위에 있던 냅킨을 집어들었습니다
그리고 협상 조건만 맞는다면 리오넬 메시와 바로 계약하겠다는 글을 적고 자필 사인을 해서 가지올리에게 건냈습니다
민구엘라와 가지올리 또한 냅킨 위에 싸인을 했고 상징적인 효과로는 충분한 계약서가 완성되었습니다
그 유명한 "냅킨 계약서"가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후에도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선수로서 메시에게도 문제가 있었고 가정적인 문제 또한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렉샤흐는 계약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결국 계약을 체결하는데에 성공하게 됩니다
2001년 1월 8일 바르셀로나에 있는 한 식당에서 최종 계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이후 두 통의 편지가 로사리오의 메시 가족에게 전달되었죠
렉샤흐가 보낸 FC바르셀로나와의 최종 계약서와 재정적인 지원에 대한 조항을 담은 문서였습니다
그 문서에는 그들이 임대할 집, 아이들을 위한 학교, 성장 호르몬 요법에 발생하는 치료비 전액과 클럽에서 생활비 연간 7000만원을 메시 가족에게 지급한다는 등 여러 재정적 지원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메시 가족은 이 편지를 확인한 후 마침내 바르셀로나로 떠날 결심을 할 수 있었습니다
2001년 2월 15일. 마침내 리오넬 메시는 FC바르셀로나의 선수로서 바르셀로나의 땅을 밟게 되었습니다
댓글목록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