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상대 최다이닝·투구·탈삼진 경신한 ‘벤츠형’의 재미있는 투구[SS 집중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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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광주=장강훈 기자] 재미있는 투수다. 우선 이름이 매우 길다. 크리스토퍼 크리소스토모 메르세데스(31·키움). 독일 유명 차량 브랜드인 메르세데스(Mercedes)와 스펠링이 같다. 그래서 ‘벤츠형’으로 불린다고 한다.
‘벤츠형’이 KIA를 상대로 최다 이닝, 최다 투구 수, 최다실점했다. 그래도 넉넉한 점수차(6점)를 안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승패를 떠나, 투구 내용이 재미있다. 최고구속은 시속 145㎞였는데, 포심 패스트볼이 모두 다른 궤적으로 날아들었다.
휘는 각이 큰 커브, 종으로 예리하게 떨어지는 슬라이더도 있다. 싱커성인데 우타자 몸쪽으로 짧게 휘며 떨어지는 투심 패스트볼도 보였다. ‘까다로운 구질’을 가진 왼손이다.

‘파이어 볼러’는 아니지만, 포심 한 가지로 대여섯가지 구종을 던지는 효과를 내는데다 구속차, 궤적차로 배트를 비껴가니 초구를 던질 때나 100개째를 던질 때나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던지는 순간까지 공을 감추는 ‘디셉션’ 동작까지 좋아, KIA 타자들이 속구 타이밍이 배트를 내밀어도 늦기 일쑤였다. 그만큼 쉽게 쉽게 던진다. 밸런스 중심의 ‘맞혀잡는 피칭’이 몸에 밴 듯한 인상.
지난달 키움과 계약한 메르세데스는 두 차례 등판에서 모두 5.2이닝씩 던졌다. 두산을 상대로 치른 데뷔전에서는 8안타 2실점. KT를 만나서는 6안타 2실점했다. 홈런을 하나도 맞지 않았고, 볼넷 두 개 이상 내주지 않은 것도 눈에 띄는 점. ‘제구와 완급조절이 되는 투수’라는 의미다.

이날 메르세데스는 7회 1사까지 103개를 던지며 삼진 8개를 솎아냈다. 홈런 두 방을 포함해 6안타 5실점.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 투구 수 100개 이상, 5실점 모두 KBO리그 데뷔 최고 기록이다.
한 번도 허용하지 않았던 홈런도 두 방을 맞았다. 약점으로 꼽히는 지점이다. 좌타자 몸쪽에 던질 만한 구종이 없다. 바깥쪽 보더라인을 기준으로 상단 모서리를 스치듯 통과하는 속구, 하단 모서리에서 빠져나가거나 떨어지는 변화구가 전부다. 구속이 빠르지 않으니 과감한 몸쪽 승부가 어렵다. 속구 궤적 변화를 조절하는 것 같지만, 핀포인트까지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1회말 김호령에 내준 솔로 홈런보다, 7회말 최형우에게 중월 2루타, 나성범에게 중월 2점 홈런을 내준 대목이 이를 대변한다. 이른바 ‘반대궤적(왼손 투수가 좌타자 몸쪽으로 휘어지는 구종) 투구’를 만들지 못하면, 노련한 베테랑 좌타자에게 공략당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메르세데스의 투구는 ‘강속구’를 지향하는 KBO리그 젊은 투수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구속보다 ‘원하는 곳에 정확히 던지는 것’ ‘타자의 적극성을 이용하는 여유’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이다.

키움 관계자는 “일본프로야구에서 육성형 외국인 선수로 시작해 요미우리, 지바 롯데 등에서 8년가량 뛴 선수”라고 설명했다.
메르세데스가 ‘재미있는 투구’를 하는 이유를 짐작할 만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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