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공개하는 ‘비와 ‘얼천’의 이야기’ “분한 마음에 라커에서 5분간…!”[SS 비하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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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장강훈 기자] 비와는 악연이다. 불가항력일 수도 있지만 ‘하필이면…’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혹했다. 그래도 무너지는 멘탈을 부여잡았다. 역대 최고 성적을 적었으니 “성장통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싱긋 웃고 훌훌 털었다. ‘얼굴천재’ 이세희(28·삼천리)가 ‘강한 멘탈’로 거듭났다.
이세희는 14일 경기도 포천 몽베르컨트리클럽(파72·6610야드)에서 막을 올리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메디힐·한국일보 챔피언십(총상금 10억원)에 출전한다. 홍현지(23·태왕아너스) 김희지(24·골프존) 등 정규투어 경험이 적은 선수들과 오전 7시10분 출발한다.

이날 포천은 약하게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됐다. 몽베르CC는 올해 중지로 잔디를 교체한 뒤 만족할 만한 배수시설로 무장했다. 연습라운드가 열린 13일에도 폭우가 내리자 페어웨이와 그린에 물이 잠시 고였지만 이내 빠졌다. 연습라운드를 마치지 않은 선수들은 그린 위에서 퍼팅 훈련에 매진했는데,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은 표정을 보였다.
이세희는 애증과 애정이 교차하는 마음으로 비를 볼 수밖에 없다. 10일 막을 내린 제주삼다수 마스터스 3, 4라운드 때문이다. 대회가 열린 제주 서귀포 사이프러스 골프&리조트는 9일 오전부터 비가 내렸다. 순간적으로 집중호우가 내리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물을 많이 머금는 잔디를 심어 정상적으로 경기를 치르기 힘들어 보였다.

선두에 3타 뒤진 공동 4위로 3라운드를 시작한 이세희는 힘겹게 2번홀까지 마친 뒤 3라운드 티잉 그라운드 앞에서 2시간 30분을 대기했다. 그린에 물이 고인 탓에 경기를 진행하기 어려웠다. 퍼붓는 비를 맞으며 장시간 대기하면, 몸이 굳을 수밖에 없다. 결국 경기는 중단됐고, 3라운드를 미처 마치지 못했다.
10일 재개한 3라운드 잔여경기에서 버디 두 개를 추가하며 선두 경쟁에 뛰어들었다. 1타 차까지 따라붙어 ‘챔피언조 라운드’를 기대할 만했지만, 또 불운이 찾아왔다. 18번홀(파5) 티샷이 페어웨이에 박혀 ‘실종’되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티샷한 공은 3분 이내에 찾아야 한다. 페어웨이 정중앙으로 날아간 볼이 감쪽같이 사라졌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

결국 벌타를 받고 세 번째 샷으로 티샷했는데, 다음 샷을 위해 걸어가다 초구를 찾았다. 포어캐디도 없고, 비가 내린 특수 상황이라는 고려해 ‘운영의 묘’를 기대했지만, KLPGA 경기위원은 공정성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3라운드 마지막 홀에서 더블보기를 범해 3타 차 공동 4위로 밀려 사실상 우승경쟁에서 멀어졌다.
억울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이세희는 “3라운드를 마치고 분이 풀리지 않았다. 아무도 마주치고 싶지 않아 라커로 들어가 5분가량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마음을 가라 앉혔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밝고 긍정적인 성격인 게 도움이 됐다.
그는 “멘탈코치인 김필중 박사님께서 ‘네 샷이 잘못된 게 아니다. 오히려 완벽한 샷을 했는데 정말 불운한 일로 타수를 잃은 것이니 의기소침할 필요 없다. 불가항력이라고 생각하고, 성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더라. 운이 없었을 뿐이라고 생각하니 힘이 나더라”고 밝혔다.

메인 후원사인 삼천리 이만득 회장도 해외 출장 중에 소식을 듣고 전화를 걸어왔다. 박창준 코치도 위로의 말을 전했다. 모두가 자기 일처럼 아쉬워하고, 억울해하니 이세희도 “최종라운드에서 잃었던 2타를 더 줄이면 되겠다”고 다짐했다. 실제로 이세희는 최종라운드에서 버디 3개와 보기 1개를 바꿔 2타를 더 줄였다.
그는 “우승 경쟁을 못한 건 아쉽지만, 정규투어 개인 최고 성적(15언더파 273타·공동 6위)을 내지 않았나. 성장통이라고 생각하고, 다음 대회 열심히 준비하겠다”고 강조했다. 오기도 생겼고 우승 경쟁에 뛰어들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비 오는 몽베르’도 두렵지 않다.

‘얼굴천재’가 멘탈까지 강화해 대약진을 노린다. 포천은 ‘약속의 땅’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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