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 다시 장충으로!” 이준희 회장, 모래판 부활 그린다…“기틀부터 만들어야죠” [SS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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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판의 신사’ 이준희 회장 취임 6개월 인터뷰
“실력과 팬덤 두 마리 토끼 잡겠다”

[스포츠서울 | 김민규 기자] “1980년대 씨름 열풍이 다시 볼 수 있을까.”
이 해답을 위해 전설의 천하장사 이준희(제44대 대한씨름협회장)가 발로 뛰며 씨름 재도약을 준비 중이다. 씨름협회 수장을 맡은 지 6개월, 이준희 회장은 “뭘 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쁘게 지나갔다”고 돌아보며, 점진적 변화와 팬 중심 전략으로 ‘씨름 살리기’에 나섰다. 다시 장충체육관에 모래판을 깔고, 씨름의 부흥기를 꿈꾼다.
이 회장은 1980년대 ‘모래판의 신사’로 불렸던 씨름계 레전드다. 천하장사 3회, 백두장사 7회의 위업을 세우며 모래판을 호령했다. 이제 그는 대한씨름협회장으로서 대한민국 전통 스포츠 씨름을 부활에 앞장서고 있다.
최근 스포츠서울과 인터뷰에서 이 회장은 “책임감이 막중하다. 머릿속엔 온통 씨름의 미래밖에 없다. (취임 후 6개월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다”라며 “걱정이 태산 같다. 항상 ‘씨름이 다시 한번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까’라고 고민한다. 되든, 안 되든 해보려 한다”고 강조했다.

◇ 학교 씨름부터 차근차근, 밑그림 다시 그린다
이 회장이 가장 우려하는 건 씨름 저변의 붕괴다. 저출산으로 초등학교 팀 선수 수가 줄어들면서 학교 씨름의 침체가 가장 큰 위기 요인이다. 이 회장이 ‘유소년 씨름 저변 확대’ ‘생활 속 스포츠로서의 씨름’을 공약으로 내건 이유이기도 하다.
“스포츠 전반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10년 전보다 초등학생 수가 줄어든 것이 눈에 보인다”라며 “또 코로나 이후 체육 수업 위축과 안전 규제 등으로 학생 씨름이 크게 줄어들었다. 이대로 가면 10년 뒤 씨름은 더 힘들다”고 짚었다.
실제로 코로나 이후 초·중학교 씨름팀이 줄어들었고, 투기 종목 전반이 침체한 상태다. 특히 유소년 씨름은 수도권에서의 위축이 심각하며, 선수층의 단절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회장은 “유소년 선수 저변이 넓어야 민속씨름도, 실업팀도 산다”며 “중학교에 진학해 적성을 찾는 구조가 일반화됐는데, 이때 관두는 이들이 너무 많다. 씨름이 ‘학원 다니듯 하는 것’이 됐다”고 우려했다.
이를 위해 그는 “초·중·고부터 대학교까지 씨름 인프라를 연계하고, 대학교 팀을 만들어 민속씨름과 이어가야 한다”며 생태계 확장에 주력할 계획을 밝혔다.

◇ 역점 사업=여자·민속 씨름 ‘재건 및 활성화’
씨름판에서 영광을 누렸다. 그리고 쇠락하는 모습도 지켜봤다. 이 회장은 “1980년대 ‘씨름 열풍을 다시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잘 나갈 때 안주한 면이 있지 않았나 싶다”라며 “야구가 1000만 관중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면 부럽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그래서 내 임기 동안 다 이룰 순 없겠지만 그 토대를 만들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역점 사업으로 크게 ▲여자 씨름 활성화 ▲민속 씨름 발전 ▲팬 유치 및 관심 콘텐츠 제작 등 세 가지를 꼽았다.
먼저 여자 씨름은 관심은 늘었지만 인프라는 여전히 취약하다고 진단했다. 이 회장은 “최근 여자 씨름이 인기를 얻고 팬 유입도 있지만 대중화에는 한계가 있다. 여자 씨름 인기를 유지하고 더 활성화해야 한다”라며 “학교 씨름부터 실업팀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여자 씨름 인프라 확충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민속씨름 전용 경기장 설립도 역점 과제로 꼽았다. 임기 중 장충체육관에 모래판을 다시 한번 깔아보고 싶다는 다짐이다. 민속씨름이 태어난 곳에서 영광을 되찾아본다는 계획이다.
“장충체육관에서 다시 한번 민속씨름을 열어보고 싶다. 씨름의 태동지에서 부활의 신호탄을 쏘고 싶다”라며 “지금도 민속씨름은 연간 9개 대회를 열고 있고, 5체급 경기를 TV로 중계하고 있다. 하지만 관중을 끌어들이는 마케팅은 지자체팀 중심의 한계로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팬들은 더 좋은 기술도, 새로운 스타도 보고 싶다. 1980년대의 재미와 스타를 다시 보여주려면, 단발성 홍보나 스폰서보다 지속 가능한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부연했다.

◇ ‘모래판의 신사’가 걸어가는 개혁의 길
이 회장은 선수 시절부터 지도자·행정까지 체험한 경험을 기반으로 ‘점진적 개혁’을 선택했다. 무리한 변화보다는 차근차근 체질을 바꾸는 방식이다.
현재 씨름은 상위권 18개 대학팀과 실업 19개 팀에 불과하지만, 이 회장은 자원 자체는 충분히 많다고 본다. 핵심은 ‘보여줄 무대’를 만들고, 팬들이 기억할 수 있는 스토리를 입히는 것이다. 더불어 2023~2027년 정부의 ‘K-씨름 지원 사업’과 ‘소백급 도입’은 씨름계에 긍정 신호로 평가된다.
나아가 궁금적인 목표로 ‘씨름의 프로화’도 바라본다. 그는 “지금도 선수들은 연봉 받고, 계약금도 받지만 표면화되지 않아 초중고 선수들이 실감을 못 한다. 씨름을 시킬지 고민하는 부모들에게도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 진출에도 뜻을 두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 아래 매년 해외 친선대회, 문화행사 초청이 이어지고 있으며, 오는 10월에는 미국 워싱턴 한국문화원에서 씨름을 알릴 계획이다. 이 회장은 “장기적으로는 아시아씨름연맹을 재구성해 아시안게임 진입 기반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끝으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임기 중에 씨름이 완전히 부활할 수는 없겠지만, 기틀은 만들어야죠. 2~3년 뒤에 ‘좀 바뀌었네’ 소리 들으면 그걸로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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