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용마저 서울을 떠나는 현실…낭만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K리그, 양보·배려 없이 레전드도 없다[SS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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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정다워 기자] 한국 축구를 대표하던 미드필더 기성용(36)은 FC서울의 상징이었다.
기성용과 서울의 결별은 K리그를 넘어 한국 축구 전체에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기성용은 서울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10대 시절 데뷔해 유럽을 거쳐 복귀하기까지 기성용과 서울은 늘 함께였다. 게다가 30대 후반을 향해 가는 노장이 은퇴를 앞두고 팀을 옮기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럽다.
서울의 경우 단순히 기성용 케이스만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앞서 박주영, 이청용, 오스마르, 데얀 등이 찝찝하게 결별해 이번 사건을 통해 ‘팬심’이 더 분노한 경향이 있다. 흔히 말하는 ‘아름다운 이별’을 기대하는 팬 입장에서는 같은 일을 반복하는 구단에 화가 날 만하다.
과거엔 원클럽맨이라 불리며 낭만을 간직한 채 팀을 떠나는 스타가 적지 않았다. 당장 서울의 김기동 감독만 해도 2012년 불혹의 나이에 포항에서 레전드 대우를 받으며 은퇴했다. 최근엔 사례를 찾기 어렵다. 전북 현대 최철순 정도가 유일하다. 대부분의 선수가 한 팀에 머물지 않고 자주 적을 옮긴다.
승강제 출범 후 구단은 생존이 걸린 극한 환경에 내몰렸다. 자연스럽게 ‘효율’을 중요하게 여긴다. 구단은 이름값 있는 베테랑이 바로 이 지점에서 매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한다. 비교적 많은 연봉을 받기 때문에 구단이나 지도자는 대체자가 충분하다고 판단하게 된다. 보통 이름값 있는 스타는 연봉을 보전해주는 팀이 나오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새 팀을 찾아 떠나기도 한다.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당장 손흥민만 해도 토트넘 홋스퍼를 떠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맨체스터 시티 대표 스타 케빈 더브라위너도 나폴리(이탈리아)로 이적했다. 프란체스코 토티가 숱한 러브콜을 뒤로하고 AS로마에 남아 은퇴했던 시절과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낭만’을 찾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기성용의 경우 상황은 조금 다르다. 돈 문제가 아니다. 심지어 시즌 도중에 팀을 옮기는 특이한 사례다. 김기동 감독 체제에서 입지가 좁아졌다고 판단한 기성용의 선택이 이적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 한 번의 선택으로 서울은 레전드라 부를 만한 대형 선수와 결별했다. 기성용은 이제 서울보다 포항에서 은퇴할 가능성이 높은 선수가 됐다. 서울은 구단의 소중한 자산을 잃은 셈이다. 박주영만 해도 서울이 아닌 울산HD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다.
레전드는 양보와 배려 속에서 탄생한다. 포항에서 화려하게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던 김기동 감독조차 당시 지도자와 구단의 배려가 있었기에 박수받으며 은퇴했다. 오로지 혼자만의 능력으로 만든 피날레가 아니었다.
자존심을 조금 내려놓는 선수의 양보, 스타로 군림했던 베테랑을 배려하는 지도자의 마음, 프랜차이즈 스타와의 동행을 중요한 가치로 내거는 구단의 행보가 합쳐져야 팬이 그토록 열망하는 레전드 서사가 완성된다.
K리그 한 구단의 고위 관계자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기성용 이적의 경우 누구 하나의 잘못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라면서 “서로 양보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 간극을 좁히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K리그의 역사와 스토리를 생각할 때 레전드를 만들기 위한 구단과 지도자의 노력도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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